도데의 별을 보았습니다.
도데의 별을 보았습니다.
중학교 국어 책은 없어진지 오래라, 다른 버전을 보아선지 예전만큼의 감동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故김붕구 선생님의 버전이 주었던 감동은 기억합니다.
그런 사랑이 있을까 싶었는데 제게도 찾아오는군요.
제게는 너무 과분해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서 천사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지만(실제로 제 눈에는 천사로 보인답니다) 바라만 보아도 사랑스럽고 행복한 그런 사랑입니다.
이것이 사랑이 맞는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요즘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바라보는 목동이 된 기분이랍니다.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년 5월 13일 ~ 1897년 12월 16일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스 남부의 랑그도크 지방의 님(Nîmes)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뱅상 도데는 비단 제조업을 하고 있었지만 불운을 부르는 사람이었고 하는 일마다 실패해서 알퐁스 도데의 어린 시절은 상당히 불우했다. 알퐁스 도데는 자라서 리용(Lyon)을 떠나 알레스(Alès)로 가서 교사 생활을 했지만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 때문에 심한 노이로제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국 1년여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었으며 후에 그의 회고로는 "알레스를 떠난 몇달 뒤에도 나 자신이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 가운데 서 있는 듯한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평생을 매독에 시달려 17세 때 걸린 매독이 39세에 척수 매독으로 진행,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통증만이 아니었다. 척수신경 손상으로 다리의 감각 기능이 없어진 탓에 몸의 균형 잡기가 힘들어져 걸핏하면 비틀거렸고 걸을 때는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남프랑스의 시인 미스트라르를 비롯하여 귀스타브 플로베르, 졸라, E.공쿠르, 투르게네프 등과 친교를 맺었으며, 아내 쥘리의 내조로 행복한 57년의 생애를 파리에서 보냈다.
당시 매독의 '첨단 치료제'는 수은이었다. 오랫동안 수은 치료를 받았던 도데는 수은중독에도 시달렸다. 통증을 견딜 수 없었던 도데는 모르핀까지 맞았다. 주사를 맞을 때마다 구역질로 고생했지만, 모르핀을 맞아야 그나마 통증을 잊고 잠시라도 잠을 잘 수 있었다.
사망하기 얼마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생을 너무 많이 사랑한 나머지 하느님이 내게 벌을 주신 거야."
말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약을 잘못 쓴 탓에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1897년 12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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